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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감, 한국인은 왜 ‘비자주인’이 되었을까
기사입력: 2017/05/27 [00:25]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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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모양주의(慕洋主義)’라는 말을 만들어 써 보았다. 이것은 ‘모화주의(慕華主義)’에서 유추하여 생각해 낸 말이다. 조선시대에 중국을 터무니없이 우러러본 일부 사대부처럼 지금 대한민국에는 서양을 터무니없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많다는 데에서 착안한 것이다.


모양주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조장한 집단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였다. 그들은 실증주의를 내세워 한국의 역사를 편년체로 나열함으로써 역사의 주체를 없애는 작업을 도맡았는데, 이병도 신석호 등 주로 일본인에게 학문을 전수한 사학자가 여기에 가담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선인에게 역사의 주체를 망각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조선사편수회가 꾸민 식민사관은 끊임없이 조선인을 폄하했다. 식민지시대 계몽주의자들과 국가주의자들도 모양주의의 징후를 드러냈다. 그들은 애창곡으로 <메기의 추억>이나 <베사메무쵸> 등을 불렀다. 혹시 외국 대학에 가서 몇 달이라도 기숙사를 빌려 쓰다 오게 되면 ‘00대학교 교환교수’라는 해괴한 이력을 내세우게 된 것도 이 시대에 비롯된 것이다.

 

다음으로 모양주의를 조장한 집단은 서구 학문을 전공한 지식인들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서구 정치가들은 물론 한국 지식인들이 경하해마지 않는 세계적인 철학자들까지도 아시아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필부 수준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막스베버와 카를 마르크스는 극동의 문화가 전제적이고 봉건적이며 조직적 성공의 요소가 결여되어 있고 서구문명 거대 담론의 외부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막스베버는 서구만이 이성적인 법률과 개인의 윤리를 안다고 믿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역사가 논쟁’에서 아시아를 악과 연결시켰다.(프리이드먼 Politics, 14)

 

또한 헤겔은 ‘오리엔탈 전제주의’라는 적용 범위를 개발했다.

 

“동양인들은 정신이 그 자체로 자유롭다는 지식을 획득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 따라서 그 자유로운 한 사람은 전제군주이지 자유인은 아니다.”(헤겔, Philosophy of History, 18.)

 

그러나 한국의 지식인들은 아직까지도 서구의 철학자들을 지나치게 선망한다. 그들은 146년 전(1871) 파리코뮌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하고 과찬을 늘어놓으면서도 민중의 저항과 자치역량에서 파리코뮌을 능가하는 ‘광주’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아시아의 합리적인 가치 규범과 풍부한 역사를 배제한다. 그들은 유럽사회가 야만에서 봉건제와 자본주의로 단계적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헤겔과 칸트의 논리를 추종하여 아시아 사회를 유럽사회에 견강부회로 적용시킨다. 한국의 지식인들만큼 유럽의 살롱 문화를 선망하는 부류가 세상 또 어디에 더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모양주의자는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프랑스혁명은 대단한 것으로 알지만 중국인민혁명이나 조선역성혁명은 나쁜 것인 줄 안다. 모양주의자 중에는 단연 구미 유학파가 많다. 그들 중에는 실없이 유럽에 몇 년 다녀온 경우도 있다. 그리고는 ‘템즈강의 안개’가 그립다고 하거나 '하이델베르크의 빵’이 먹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양주의자는 이유 없이 메트로폴리탄의 연극을 동경하거나(김민웅), 이유 없이 파리를 선호하거나(홍세화), 이유 없이 파스타 즐기는 것을 자랑하거나(심상정), 이유 없이 프로야구를 극찬하거나(조국), 이유 없이 클래식음악을 신성시하거나(진중권), 이유 없이 재클린을 선망한다(김어준).

 

모양주의자는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은 가히 훌륭하다고 여기지만 조선의 종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모양주의자는 <르 몽드>나 <더 타임스> <뉴욕타임스>를 대단한 언론인 줄 안다. 그들에게 프랑스 레지스탕스는 멋지지만 한국의 빨치산은 토비 수준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지식인들이 대체로 간디, 테레사, 달라이라마 등을 존경하는 것도 모양주의와 관련된다. 왜냐하면 이들을 부각시킨 것이 서양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이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만든 인물인지를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체 게바라는 한없이 멋지지만 김일성은 박정희와 동격 수준으로 치부해 버리며 만델라가 김대중보다 한참이나 나은 인물인 줄 안다.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서구의 합리주의는 자주 비합리적이다. 서양철학에서 이성은 개인, 고독한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 예컨대 광주민중항쟁은 인간의 이성은 고독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임을 의식하는 인간들이 이루어낸 것임을 보여준다.(조지 카치아피카스, 『한국의 민중봉기』 54.)

 

이제는 모양주의를 떨쳐버리고 우리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자주의식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김갑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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