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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의 “주적” 사상검증이 비열한 이유
‘배신자’ 낙인 피해자 유승민, 문재인엔 ‘종북’ 낙인찍기 시도
기사입력: 2017/04/20 [22:59]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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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정당 유승민 대선후보는 19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노골적인 색깔공세와 사상검증을 시도했다. 특히 유 후보는 북한에 대한 철 지난 '주적' 개념을 거론하며 '레드 콤플렉스'(적색 공포증)를 자극하고 나섰다.

 

유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서 열린 '2017 대선후보 KBS 초청토론'에서 문 후보를 향해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문 후보는 "(주적을 설정하는 것이) 국방부로서는 할 일이지만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유 후보는 "정부 공식문서인 국방백서에 주적이라고 나와 있다"며 "국군통수권자가 '주적'이라고 말을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몰아붙였다.

 

"국방백서에 주적이라고 나와있다"는 유승민
2000년 이후 국방백서에는 "주적" 표현 없어

 

그러나 "국방백서에 주적이라고 나와있다"는 유 후보의 주장은 사실 관계부터 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2016 국방백서'에는 "주적" 표현이 없다. 국방백서 34쪽을 보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사이버공격, 테러 위협은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돼 있을 뿐이다.

 

또 '위협이 지속되는 한'이라는 문구는 평화적인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면 '적'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북한은 헌법에 규정된 '평화적 통일'을 위한 화해·협력의 상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 후보는 '북한'을 맹목적으로 '섬멸해야 할 주된 적'으로만 상정한 대적관을 문 후보에게 강요하고 있다.

 

참고로, "주적" 표현은 지난 1994년 3월 영변 핵위기 당시 제8차 남북실무접촉에서 북한 측 대표로 나온 박영수 조평통 서기국 부국장의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을 계기로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명시됐다. 2000년까지 유지되던 "주적" 표현은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2004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직접적 군사위협"으로 대체됐다. 현재의 "우리의 적" 표현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국방백서부터 사용됐다.

 

결국 틈만 나면 "제가 국회 국방위원장을 해봐서 잘 안다"며 안보전문가를 자처하던 유 후보가 교묘하게 사실관계를 비틀어 색깔공세와 사상검증에 나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제18~19대 국회에서 8년 연속으로 국방위 소속으로 활동했고,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방위원장을 지냈다.

 

이와 관련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주적'이 있다면 '부차적인 적'도 있어야 한다. 북한이 주적이라면 중국과 러시아는 부차적인 적이냐"며 "아직까지도 냉전시대의 주적개념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은 우리에게 한 편으로는 '적'이면서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가 통합해야 할 같은 '민족'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며 "안보와 남북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최고지도자가 병행해야 할 양대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도 페이스북에 "주적논란은 안보관하고 아무 관련이 없다"며 "주적개념을 국방백서에 처음 쓴 것이 1995년인데, 그럼 그 이전의 대통령들은 안보관이 허약한 거냐"고 질타했다.

 

그는 "남북관계는 이중적이다. 적대의 현실도 있고 동시에 협력의 필요도 있다"며 "이명박이 출발시킨 역주행 기차가 노태우 정부 수준 이상으로 후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합리적 보수? 웃기지 마라"라고 꼬집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국방부는 20일 "군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주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2016년 국방백서에 보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표현돼 있다"며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주적 표현 없어도 문제 없다" 발언 당시 '비서실장' 유승민은 함구

 

유승민 후보는 '원조 친박(친박근혜)' 인사로 꼽힌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5년 3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 대학원(SAIS)을 방문한 자리에서 "남북한 관계에는 이중성이 있다"며 "주적 표현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당장 우리 군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던 유 후보는 어떠한 공개적인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지금은 "북한이 우리의 주적"이라고 말하지 못하면 대통령 될 자격도 없는 것처럼 낙인을 찍는 유 후보가 당시 '주군'으로 모시던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서는 함구했던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해 7월 북한의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에게 남북 경제·문화교류 사업의 협조를 당부하는 내용의 친필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3년 전인 2002년 박 전 대통령의 방북 당시 김 위원장과 만나 약속한 무언가를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의 편지였다.

 

지난해 이 편지가 공개돼 논란을 빚을 당시 문재인 후보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충정으로 이해한다"면서도 "문제는, 자기는 해도 되고 남이 하면 종북이라는 이중잣대"라고 지적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송민순 회고록' 내용을 빌미로 "문재인이 북한과 내통했다"고 몰아세우며 사상검증에 나섰던 유 후보를 포함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박근혜 정부를 향한 일침이었다.

 

'배신의 정치' 낙인에 "칼로 찌른 아픔" 호소하던 유승민
상대 후보에는 사상검증으로 '종북' 낙인 시도

 

특히 유 후보는 일방적인 '낙인찍기'의 폭력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그는 2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힌 피해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유 후보는 얼마 전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집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서 '배신의 정치' 낙인에 대해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칼로 찌른 아픔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런 유 후보가 상대 후보에 대한 '종북' 낙인찍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유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유사한 보수 진영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색깔공세나 사상검증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행태는 '합리적 보수'라는 슬로건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북풍몰이'에 나서던 기존 수구세력의 모습과 판박이다. 심지어 1997년 직전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은 북한 측에 판문점 내 총격시위를 요청한 '총풍'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유 후보는 '주적' 논란이 들끓는 20일에도 문 후보를 겨냥해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후보를 과연 대통령으로 뽑아서 되겠느냐"며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인데 주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주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날을 세웠다. 이러한 색깔 공세에는 '김대중 정신 계승'을 표방해왔던 국민의당까지 가세하고 있다.

 

이에 문 후보는 "선거 때가 돌아오니 또 색깔론, 안보장사가 다시 또 좌판을 깔았다"며 "이제 국민들이 속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문 후보는 또한 "대통령으로 하여금 북한을 주적으로 공개 천명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는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가 각각 북한을 대하는 입장이 달라야 한다"며 "대통령은 그 모든 것을 다 함께 관장하는 종합적인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중의소리=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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