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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전향 장기수 임방규 선생
"악법에 저항한 것이 어찌 민주인사가 아닌가"
기사입력: 2004/07/08 [21:1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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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의문사 진상 규명위원회가 간첩출신 비전향 장기수 2명을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의문사로 인정을 했다.

이와 반대로 민주화 보상 심의 위원회는 "대한 민국의 헌정 질서를 부인하고 국가 안전을 위협한 사람들이 수감 중에 반민주악법의 폐지를 주장했다고 해서 민주화 운동 관련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의문사 결정자중 한 사람인 변형만씨를 명예회복과 보상심의 해줄 것을 신청한 사람은 비전향 장기수로서 32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임방규씨이다. 

임방규씨를 만나 요즘 언론의 소동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향 공작에 맞서다가 숨진 장기수에 관한 견해를 물었다.

임방규
임방규선생

 "임선생은 장기수 생활을 했고 변형만씨의 명예회복 신청을 했는데 어떤 연유로 그 분을 신청했습니까?"

 "변형만은 가족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신청을 했어요. 변형만은 국가 폭력에 의해 살해된 사람입니다. 전향 공작이 먹혀들지 않자 당시 단식을 하고 있던 변형만에게 강제 급식을 시켰습니다. 그러니까 1980년인데 그 과정에서 혈관 파열로 죽은 것이예요. 그가 단식을 한 것은 사회안전법 폐지와 보호감호제 철폐를 주장했죠. 1957년 남파된 간첩협의로 징역15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습니다. 그런데 비전향 장기수를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 안전법에 의해서 청주 보안 감호소에 재 수감된 거예요. 1기 의문사 위에서 이미 형을 다 살고 사회 안전법 폐지를 주장하다 숨진 것으로 민주화 운동과 관련이 있다며 의문사로 인정한 겁니다."

악법에 반대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어간 것이 어찌 민주화와 상관이 없나?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의문사위의 결정을 '빨치산과 남파간첩이 민주화 운동자인가?' 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도 빨치산을 했어요. 해방 후 고창 중학교 시절 학생 운동을 했죠. 민주 학생동맹에 가입했었고 전주 공고에 다니다 6·25전에 상경했어요. 6·25때 의용군으로 가서 낙동강 전투에도 참여했다가 다시 쫓겨 임실로 들어갔습니다. 전북도당이 회문산에 있어 그 곳으로 가는 도중 임실 성수산, 학정리, 세심정, 성문안, 물우리 등에서 유격대로 활동했어요. 당시 외팔이 부대라는 별명이 붙었죠. 나중에 붙들려 징역을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출옥해서 내 나이 46살에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결혼 5개월 후에 다시 아무 영장이나 재판 절차도 없이 그냥 구속되어서 청주 보안 감호소에 쳐 넣어진 거예요. 그렇게 해서 33년 가량 징역을 살았습니다.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형을 다 살고 나와도 아무 때나 재판 없이 사람을 가둘 수 있는 것이 사회 안전법이예요. 이 법이 박정희 때 만들어진 것인데 이 얼마나 반민주적인 악법입니까? 전향서를 쓰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감옥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유사법이 다른 나라에도 있기는 하나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이게 뭡니까?

이런 악법을 폐지하자고 하다가 죽은 사람이 민주주의발전에 기여한 것 아닙니까?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회주의자들은 독립 운동한 것이 아닙니까? 한 인간이 악법에 반대해서 자신의 자존심이나 존엄성을 지키고자 몸부림치다 죽었는데 사람을 고문에 의해 죽인 군부 학살자들은 그러면 어떤 존재들입니까? 폭력 가해자가 민주주의자 입니까?
전향 강요 자체가 비민주주의예요. 내가 징역 33년을 살고 나와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지만 지금도 나를 다시 감호소로 보낼 수 있어요. 현행법이 그렇습니다. 보호관찰법이 그 것인데 3개월마다 자신의 동향을 정보기관에 보고해야만 합니다. '어디를 갔었고, 누구를 만났고, 왜 갔으며 왜 만났느냐'를 자세하게 보고해야 합니다. 보고하지 않거나 허위 보고하면 2년 이하의 징역,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어요. 나는 동향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는데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또 다시 나를 감호소에 집어 넣을 수 있어요. 그런 법이 엄연히 존속하고 있습니다."

"화제를 바꾸어서 사적인 질문을 하겠는데요. 지금 하시는 일이 있습니까?"

"2000년 6·15를 기념해서 만들어진 통일광장(비 전향 장기수 모임)대표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 춘추와 가족 관계는요?"

"73살입니다. 딸이 하나 있어요. 내가 결혼 후 다시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가졌던 아이인데 지금 27살입니다. 동국대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저도 문학을 하지만 아버님의 문제라든가 이 분단상황의 아픔 때문에 문예창작에 관심이 많은가 보죠?"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죠.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깐요."

임방규

악법을 폐지하려다가 죽은 사람이 어찌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가 없나. 깊은 밤, 아직 우리 사회는 이 어둠보다도 더 어둡다.

비극적 역사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민주적인 역사는 빨리 알리고 치유해야....

"임선생님 말씀 가운데 빨치산 활동을 임실에서 하셨다고 했는데 제 고향이 선생님이 활동 하셨다고 했던 그 무대거든요?  나는 어려서 할아버지 등에 업힌 채 빨치산이 저녁에 집안에 들어와 양식을 가져갈 때  쩔쩔매는 할아버지 모습을 기억합니다. 나의 조부님은 한학자로서 서당 훈장이셨고 그 때도 수염을 기르고 갓을 쓰셨습니다. 혹시 그런 분 기억합니까?"

"내 기억에 그런 한 분이 있습니다. 인품이 잘 생겨 보였는데, 내 짧은 머리를 손으로 누르면서 '아~참'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인상이 기억납니다. "

"혹시 그 분이 저희 조부인지도 모르겠네요. 참 묘한 인연이네요.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다니.... 조국 분단의 아픔은 언제 끝날 것인지 그 상처가 너무 깊고 크다는 것을 느낍니다."

"엄청난 비극이죠.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민주적인 것은 역사 앞에 알리고 치유해 나가도록 해야죠, 잡범으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도 이에 반발하다 죽었다고 해서 민주화로 인정하는데, 비전향 장기수는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이미 처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판도 없이 끌어다가 고문을 했습니다. 이런 기본권을 말살하는데 맞서 죽음으로 항거한 사람은 한국사회의 민주화 수준을 고려해서라도 명예회복과 보상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잇겠죠."

전향제도는 일제의 악랄한 유산, 현재 나타나는 언론의 호도는 지난 날의 군부독재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 

"저도 감옥에 있을 때, 그러니까 전두환 군부 독재 시절인데 국가 보안법으로 구속하고 전향서를 쓰라는 거예요. '본래 민주주의 신념으로 전두환 독재에 항거하다 구속된 것인데 어디로 전향하란 말이냐? 민주주의 신념을 꺾고 독재로 사상전환을 하란 말이냐?'고 반항했지만 보호감호법을 들먹이면서 협박해 어쩔 수 없이 써준 일이 있습니다. 이런 강제 전향 공작은 73년6월 전국의 교도소에 사상 전향 공작 반이 설치되면서부터인데 이 과정에서 비인간적 비민주적 전향 공작이 폭력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은 폭력과 모멸감을 극복 못하고 전향한 사람인 경우 2000년 북송 대상에서 제의했지 않습니까? 지금 28명이 생존해 있다고 하는데 북으로 가기로 원하는 사람인 경우 당연히 북으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그렇죠, 저는 고향이 전북 부안이니까 다행이지만 이북이 고향인 사람은 또 다른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끝까지 전향을 거부한자는 보내주고 강제 전향을 시킨 사람은 보내주지 않으니 이러고도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전향제도는 일제의 악랄한 유산입니다.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서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철저히 짓밟는 그 제도를 해방 후 친일파들이 고스란히 받아 들였고, 박정희 정권 때 깡패한테 '떡봉이'라는 완장을 주어 비전향 장기수를 전향시키면 풀어준다는 미끼를 주었습니다. 이 때에 온몸을 바늘로 쿡쿡 찌르는 온갖 만행을 저질렀고, 이 과정에서 다섯 명의 장기수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이런 전후사정은 거두절미한 채 일부 언론이나 단체에서 악의적으로  여론을 호도 하는 것은 지난날의 군부독재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은 탓입니다."

 을지로 3가 평래옥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 맥주를 몇 잔 하면서 나눈 대화가 끝이 없을 것 같은데 밤은 깊어가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임방규선생의 이야기도 빗물처럼 계속 어둡게 들렸을 뿐이다.

강상기

<강상기님은> 서울 석관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66년 <세대>지 제1회 시부문 신인문학상수상. 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편력)시 당선. [저서] 산문집 <빗속에는 햇빛이 숨어 있다> 시집 <철새들도 집을 짓는다> 교육에세이 <자신을 흔들어라>(2004년 2월).

 

참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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