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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석의 <철학산책>
벨린스키와 러시아의 민주적 문학비평
[강대석의 철학산책-예술철학 (39)] "예술은 민족적 예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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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5/2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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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현대문학은 푸슈킨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푸슈킨은 19세기 초반 러시아의 비밀혁명결사조직인 데카브리스트의 일원이었다. 데카브리스트는 ‘십이월당원’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귀족청년장교들이 중심이 되어 전제정치에 반대하는 혁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들은 서구 계몽주의 미학의 영향을 받고 봉건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적인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이념에 젖어있었다. 이들의 영향을 받고 19세기 말에 활동한 일련의 문학 비평가들이 ‘혁명적 민주파’라 불리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벨린스키(Belinski, 1811-1848)였다.

1837년에 벨린스키는 헤겔의 철학을 알게 되면서 관념론적 예술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헤겔의 변증법은 모든 존재의 합법칙적인 발전을 중시하면서 전통적인 도식주의를 벗어나게 했지만 자연과 세계를 이념의 자기인식과정으로 파악하면서 현실을 변혁해가는 예술의 기능을 간과하였다.
 
헤겔의 철학에 의하면 절대적인 이념은 인간의 자의식 속에서 3가지 형태로 인식되는데 예술, 종교, 철학의 단계가 그것이다. 여기서 형상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예술의 단계는 가장 낮은 단계로서 인간의 의지나 이성과 구분되는 창조적인 영감의 결과다.
 
상상력이 중심이 되는 예술은 철학적인 진리를 제시하거나 구현할 수 없다. 벨린스키도 처음에는 예술을 진리의 영역과는 다른 감성영역에 한정시키려 하였다.

관념론에서 유물론 철학으로 넘어가면서 벨린스키의 예술관에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세계는 영원한 이념이 실현되는 부수적 현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이므로 새로운 철학의 과제는 초월적인 신학의 잔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예술도 신비적, 환상적 영역을 벗어나 삶의 진리를 그 자체로 밝혀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과학과 예술의 목적은 일치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에서만 구분될 뿐이다. 예술과 과학은 다 같이 인간의 행복을 실현하는 데서 길잡이가 되는 사회의식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이처럼 유물론 철학은 자연과 사회의 과학적 분석과 이해를 인간문제의 해결에서 가장 우선적인 요인으로 설정하면서 예술이 정치나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였다. 이와 더불어 벨린스키는 보편적인 것을 개별화를 통해서 묘사하는 예술의 사실주의적 전형화를 제시하였고 예술은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을 창조적으로 모방해야 한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또한 그는 그러한 예술은 필연적으로 민족적이고 민주적인 예술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신비적인 것을 벗어나 예술이 삶이나 현실과 직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이후 러시아의 미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강대석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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